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97] 난주(蘭珠, 기생)

어렸을적부터 양친슬하에서 무한한 애정속에 귀애함을 받다가,

열다섯살에 이르러 진주 시골집을 하직하고 서울에 올라오니, 부지중(不知中) 꿈가운데 기안에 이름을 ‘난주(蘭珠)’로 더짐도 또한 우연한 일이로다.

본래 진주는 색향이라.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청풍물의 한조각 이슬이 오늘날 난주에게도 전한 바 되어 꽃도 같고 달도 같은 자태는 한번 보는자는 몽혼이 되는도다.

【매일신보 1914.06.07】 1
▲ 박난주(朴蘭珠)

천성이 재기롭고 민첩하여 매양 사람을 대하면 어여쁜 말솜씨로 극진히 애정을자아내고, 또한 묘음절창의 여러가지 기능은 원래 천연한 품부인듯.

수신으로는 기생계의 하나(최고)인듯 싶고, 일본말로는 난주가 일공공이라 하여도 족하도다.

4년 전에 구슬을 떼어버리고 어떤 사람의 별실이 되어 들어간 후 사방의 온 정객들은 더욱 재미스러움을 잃어버리었더니,

세운이 변천한 탓이던지 생각도 아니하던 난주가 다시 기생계에 출신(出身)하여 광교조합에는 어찌나 광채가 더 났던지 ‘난(蘭)’자를 버리고 빛날 ‘광(光)’자를 붙이자 하던 때가 넌즉하고 벌써 작년 봄이로다.

전후 가무음곡에 못할 것이 없어 환영하는 가운데 재미롭게 지내는 난주는 방년이 20살이올시다.

여러분 다 아십시오.

● “참한 사람 만나기 원이오, 나는 재산가도 비(非)소원이야”
( 뜻: 재산이 많은 사람도 바라지 않습니다. 참한 사람을 만나는게 소원입니다.)

장래 소원을 기다리는 것은 남부 새방골 김태연의 기생 박난주인듯.

【매일신보 1914.06.07】

– 귀애(貴愛)함: 귀엽게 여겨 사랑함.
– 부지중(不知中): 알지 못하는 동안.
– 기안(妓案): 기생의 이름을 기록하는 책.
– 더짐: 던짐의 함경도 방언. 이름을 ‘적었다’는 의미로 쓰임.
– 색향(色鄕): 미인 혹은 기생이 많이 나는 고을.
– 산천풍물(山川風物): 자연과 지역의 구경거리.
– 몽혼(朦昏): 감각을 잃고 넋이 나가버림.
– 매양: 항상. 때마다.
– 묘음절창(妙音絕唱): 훌륭한 소리와 음악을 하는 명창.
– 천연한(天然한): 꾸밈이 없는.
– 품부(稟賦): 선천적으로 나고난 것.
– 수신(受信): 손님으로부터 받는 신용.
– 일공공: 근대 일본식 성적제도의 만점(滿點)인 ‘100점’을 한글로 읽은 것이다.
– 구슬: 장신구를 뜻하는 것으로, ‘구슬을 떼었다’는 것은 기생을 그만두었다는 의미.
– 별실(別室): 첩(妾)을 이르는 말.
– 세운(世運): 세상의 운수. 한일병합조약으로 세상이 변한 것을 뜻함.
– 출신하여(出身하여): 원래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말하지만, 직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으로 쓰였다.
– 넌즉하고: 무심하게도. 빠른 세월을 의미하는 말.
– 전후(前後): 앞과 뒤 모두. ‘만능’이라는 의미로 쓰임.
– 가무음곡(歌舞音曲): 노래와 춤, 음악.
– 새방골: 종로구 신문로 1가동에 있던 마을. 기생과 첩들의 집(새방)이 많아 유래한 이름.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 참고문헌:
• 每日申報. 藝壇一百人(九七).란쥬 (191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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