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후반,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의 강습 모습

위 사진은 월북 후 공훈배우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평양에 새롭게 설립된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모습. 앞줄 맨 왼쪽의 강습생은 최승희의 수제자로 알려진 무용가 김백봉(金白峰, 1927~2023)으로 한국전쟁 발발 후 1·4후퇴 때 월남하였다. 1


일본에서 무용가로 크게 성공한 최승희(崔承喜, 1911~1969)는 조선으로 귀국하여 1929년 11월 1일, 경성 고시정(古市町) 19번지, 현재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崔承喜舞踊硏究所)’를 설립하였다.

 

해방 후에는 친일행적으로 인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남편 안막(安漠)을 따라 월북하게 된다.

 

위 사진은 월북 후 공훈배우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평양에 새롭게 설립된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모습. 앞줄 맨 왼쪽의 강습생은 최승희의 수제자로 알려진 무용가 김백봉(金白峰, 1927~2023)으로 한국전쟁 발발 후 1·4후퇴 때 월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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