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26) 1947년, 죽은 어미를 껴안고 있는 새끼 북극곰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

1947년, 노르웨이와 북극점의 중간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Svalbard)의 스피츠베르겐 섬(Spitsbergen)에서 사냥당한 암컷 북극곰의 시체를 새끼로 보이는 북극곰이 껴안고 있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3
▲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 1922~2017)


작성된 기사에 따르면, 렌나르트 닐슨은 친구이자 화가인 닐스 오스트(Nils Öst, 1908~1982)와 함께 노르웨이 트롬쇠(Tromsø)에서 출발하는 북극곰사냥선 하모니호(M/S Harmoni)에 탑승하여 사냥꾼들의 생업을 30일간 취재했다.

 

항해를 떠난 지 얼마 후 새끼와 함께 있는 북극곰을 발견한 사냥꾼들이 허공에 총을 쏘기 시작했고, 어미 북극곰은 위험을 감지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생후 6개월 정도인 새끼 북극곰은 처음 보는 배에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오다가 어미의 괴성에 뒤늦게 위험을 감지했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5
▲ 도망치는 북극곰들. 새끼의 속도에 어미가 속도를 맞추며 돌아보고 있다.


도망치는 타이밍이 너무 늦은 데다가 어린 북극곰의 헤엄 속도는 느렸고, 차마 새끼를 버리고 갈 수 없었던 어미 북극곰이 속도를 늦추며 헤엄치다가 결국 추격해 온 사냥꾼의 총에 목을 맞고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7
▲ 어미 북극곰을 향해 총을 쏘는 사냥꾼


새끼 북극곰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피가 솟구치는 어미 북극곰의 목을 핥아댔지만 결국 포획되어 배로 끌어올려졌다.


이윽고 어미 북극곰의 시체도 갑판에 올라왔고, 새끼는 엄마를 깨우기 위해 머리를 비비며 노력했지만 더 이상 움직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을 자책하듯 밤낮으로 식어버린 어미를 껴안은 채 사람들이 주는 먹이도 거부했다고 한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9
▲ 포획되는 새끼 북극곰(좌) | 어미 북극곰의 시체에 달려드는 새끼(우)


당시 북극곰 가죽의 시세는 100달러(2024년 가치 1400달러)에 달했으며, 살아있는 새끼 북극곰은 500달러
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냥은 매우 성행하고 있었다. 항해를 마취고 귀환한 하모니호에는 11마리 분의 북극곰 가죽과 1마리의 살아있는 새끼 북극곰이 실려있었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1
▲ 현장에서 벗겨지는 북극곰의 가죽. 북극곰의 털은 코트와 양탄자로 사용되었고, 지방은 기름 램프용으로 팔려나갔다.


취재를 마친 렌나르트 닐슨은 “아무리 돈벌이라고는 하지만 즐거운 광경은 아니었다”라는 씁쓸한 소감을 적었다.

하지만 보도이후 많은 독자들로부터 ‘이렇게 잔인한 사진을 게재해야 하느냐’는 항의가 라이프매거진의 편집부로 빗발쳤다. 이에 렌나르트 닐슨은 훗날 “그 기사가 없었다면 대중은 어두운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스웨덴 최초의 현대적 사진기자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렌나르트 닐슨(Lennart Nilsson)이 촬영한 이 사진은 스웨덴 사진 잡지 'Se'에 게재된 이후 여러 매체에 실리다가 1947년 10월 27일 자 라이프(LIFE) 매거진에  '북극곰 사냥(HUNTING THE POLAR BEAR)'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3
▲ 갑판 아래에 갇혀있는 새끼 북극곰의 불안한 눈동자


18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스발바르 제도와 러시아에서는 15만 마리가 넘는 북극곰이 사냥당했고, 상업적인 목적의 북극곰 사냥이 중단되는 것에 국가 간 합의를 이룬 것은 1973년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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