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바비야르 학살’이후 피살자들의 옷에서 귀중품을 찾는 독일군
1941년 9월 29일에서 30일 사이에 나치 친위대(SS)는 소련 내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 근교의 ‘바비야르(Бабин Яр / Babi Yar)’에서 대규모 학살(Babi Yar Massacre)을 저질렀다.
이 기간 동안 학살된 유대인은 무려 33,771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은 학살 전 유대인들이 벗어놓은 옷과 소지품에서 귀중품을 찾고 있는 독일군 들이다.
1941년 9월 28일 일요일, 나치는 키예프에 현수막을 내걸어 모든 유대인들은 신원 증명서, 돈, 귀중품을 챙겨 집을 떠날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줄을 서서 이동하던 유대인들은 어느 순간 도시 외부에 있는 바비야르 계곡에 도착했고, 독일군이 감독하는 우크라이나 민병대로부터 옷을 벗을 것을 명령받았다. 이후 계곡 위에서 독일군은 기관총으로 끔찍한 학살을 시작했다.
▲ 사건을 다룬 제프 카뉴(Jeff Kanew) 감독의 영화 ‘바비야르(Babij Jar, 2003)’
피해자들이 죽기 직전 벗어놓은 옷에서 찾아낸 귀중품과 돈은 독일인과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후에도 학살은 계속되었고, 12개월간 바비야르에서만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포함해 약 1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영화 ‘바비야르(Babij Jar, 2003)’ 중 바비야르 계곡의 학살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