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폭증한 ‘카피바라’와의 전쟁

■ 아르헨티나 노르델타(Nordelta)의 카피바라 갈등: 생태계 복원과 계급적 긴장의 교차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2021년 본격화된 이 문제는 2025년 현재 불임 수술과 서식지 재조성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습지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야생동물의 도시 유입을 촉발했으며, 이 과정에서 부유층의 이기적 주거문화와 정부의 개발 우선 정책이 결합되어 환경적·사회적 악순환을 낳았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1
▲ 아르헨티나의 부촌 노르델타

 

1. 노르델타 개발의 역사와 환경적 파장

1.1 습지 위에 세워진 유토피아의 허상


노르델타는 1990년대 후반 파라나강 삼각주 습지대 3,000헥타르를 매립하여 건설된 폐쇄형 주거단지다. 개발업자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광고하며 45,000명 수용 규모의 도시를 조성했으나, 이는 사실상 습지 생태계의 근본적 변형을 수반하는 작업이었다. 3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주변 지역과 차단된 이 공간에는 인공 호수와 조경된 공원이 조성되었지만, 원래의 생물다양성은 급격히 훼손되었다.

 

환경학자 엔리케 비알레는 이 개발 과정을 “야생의 환상을 팔기 위한 생태계 장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 노르델타 인근에서 서식하던 재규어와 악어 등 포식자들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습지의 자연적 홍수 조절 기능도 상실되었다. 이로 인해 2013년 라스 투나스 빈민촌 홍수 시 노르델타의 방수벽을 무너뜨려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3


1.2 카피바라 개체 수 변동의 생태학적 요인

 

카피바라 개체 수는 2020년 400마리에서 2023년 3,500마리로 급증했으며, 2025년 현재 1,000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폭발적 증가는 천적 포식자의 부재와 인간 활동으로 인한 먹이 공급 증가가 결합된 결과다. 노르델타의 잘 관리된 잔디밭과 관상식물은 카피바라에게 안정적인 식량원을 제공했으며, 인공 호수는 번식에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다.

 

생물학자들은 이 현상을 ‘생태계 교란에 의한 종 우점화’ 사례로 분석한다. 원래 습지 생태계에서는 재규어와 악어가 카피바라 개체 수를 조절했으나, 개발로 인해 이러한 천적이 사라지자 카피바라가 최상위 포식자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2020년 파라나강 일대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인해 30만 헥타르 이상의 서식지가 소실되면서, 잔류 개체들의 노르델타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2. 갈등의 다층적 구조: 생태에서 계급 문제까지

2.1 인간-동물 공존의 실패 사례

 

노르델타 주민들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 축에서 발생했다. 첫째, 카피바라 무리가 도로를 점유하며 교통사고 위험을 증가시켰다. 2021년 한 모터사이클 운전자는 카피바라 군집을 피하려다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둘째, 반려동물과의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프렌치 불독 등 소형견을 키우는 주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셋째, 조경된 정원과 골프장이 카피바라의 배설물과 식생 파괴로 훼손되며 미관상 피해가 누적되었다.

 

이에 대한 주민 대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는 소총으로 무장한 채 카피바라 사냥을 시도했고, 다른 그룹은 동물보호단체와 협력해 서식지 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2021년 8월 주민 구스타보 이글레시아스가 주도한 카피바라 이주 요구 운동은, 온라인에서 #CarpinchosRevolucionarios(혁명적 카피바라) 해시태그를 탄생시키며 역풍을 맞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5


2.2 계급 갈등의 상징으로 부상

 

이 갈등은 아르헨티나의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와 결합하며 정치적 화두로 발전했다. 페론주의 진영은 노르델타를 “자연을 독점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공간장식”이라 비판하며, 카피바라를 “억압받는 서민계층의 대리인”으로 재해석하는 담론을 생산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카피바라를 아르헨티나 독립영웅 산마르틴이나 혁명가 체 게바라에 빗대는 합성 이미지가 유행했으며,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카불 진격 사진에 카피바라를 합성한 밈이 확산되기도 했다.

 

환경법학자들은 이 사건을 “생태적 정의(Ecological Justice)의 상실 사례”로 규정한다. 노르델타 개발이 부유층의 생활편의를 위해 저소득층 지역의 홍수 위험을 증가시켰다는 점, 생태계 파괴 비용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되었다는 점11에서 환경불평등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20년 화재로 인한 습지 감소 시 노르델타 주민들은 고급 정수시스템으로 물 부족을 해결한 반면, 인근 라스 투나스 주민들은 오염된 지하수에 의존해야 했다.

 

3. 갈등 해소를 위한 다각적 접근

3.1 인구 조절 정책의 한계와 가능성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정부는 2025년 2월 선택적 불임 수술과 피임제 투여를 포함한 야생동물 관리 계획을 승인했다. 이는 2021년 주민들이 요구한 강제 이주 방안이 동물복지 측면에서 비판받자, 보존주의적 접근법으로 전환한 결과다. 현재 검토 중인 수컷 카피바라 불임 수술은 우세 개체를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스태튼아일랜드 사슴 관리 사례를 참조해 3-5년 주기로 개체 수 감소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생태학자 그라시엘라 카포돌리오는 “인위적 개체 조절이 장기적 생태계 균형을 교란할 수 있다”며, 습지 복원을 통한 자연적 조절 메커니즘 회복을 주장한다. 실제로 노르델타 관리사무소는 2023년부터 버퍼존(buffer zone) 3곳을 조성해 카피바라의 주거지 접근을 차단하고, 오염된 개천 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24년 학술지 『SAGE』에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재야생화(Rewilding)’ 접근이 인간-동물 갈등 감소에 47%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7


3.2 법제도 개선 움직임

 

이 사태는 2022년 ‘습지보호법(Ley de Humedales)’ 제정 논의를 촉발시켰다. 해당 법안은 습지 개발 시 환경영향평가 강화, 기존 훼손 지역 복원 의무화, 지역사회 협의 절차 명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부동산 로비스트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2025년 현재까지 상원 비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도시계획 분야에서는 ‘다종족 공동체(Multi-species Community)’ 개념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도시 공간을 인간 중심이 아닌 다양한 생물종이 공유하는 생태계로 재구성하자는 아이디어로, 콘크리트 장벽 대신 생태적 통로 설치, 건축물의 생물다양성 증진 설계 등을 포함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동물 육교나 뉴욕의 조류 친화적 건물 규정이 선행 사례로 연구되고 있다.

 

4. 미래 과제와 정책 제언

노르델타 사례는 21세기 도시 개발이 직면한 근본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첫째, 환경 수용력(carrying capacity)을 무시한 개발이 야생동물의 도시 유입을 촉발한다는 점, 둘째, 경제적 자원이 생태적 위기 대응 능력을 결정하는 ‘환경적 계급화’ 현상, 셋째,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책이 장기적 사회비용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습지 복원을 통한 생태적 완충지대 조성 △게이트 커뮤니티의 물리적 장벽을 생태 통로로 전환 △지역주민 참여형 야생동물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제안한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개체 수 모니터링 시스템과, 습지 보존구역과 연계한 생태관광 프로그램 개발은 경제적 인센티브와 환경 보존을 결합한 혁신적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고급 주거단지 노르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피바라 갈등은 단순한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 문제를 넘어 환경 파괴, 계급 갈등, 도시 개발의 모순을 드러내는 복합적 사회현상으로 발전했다. 9


결론적으로 카피바라 갈등은 인간의 공간 확장이 야생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재고할 것을 촉구하는 경고음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동물 관리 차원을 넘어, 도시 개발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5년 현재 진행 중인 불임 수술 시범 사업과 습지보호법 입법 추진이 이러한 종합적 접근의 초석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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