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정 : 2025-05-27 @22:38
아래의 사진은 폴란드 일간지 ‘일루스트로바니 쿠리에르 초지엔니(Ilustrowany Kuryer Codzienny)’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들로 1930년대 한국의 일상과 문화를 담고 있으며, 폴란드 국립 디지털 기록보관소(Narodowe Archiwum Cyfrowe)를 통해 디지털화되어 온라인에 공개되었다.

▲ 1935년, 흰색 한복을 입은 남성이 아이를 품에 안고 돌보고 있다.

▲ 1930년, 무덤가에 서 있는 사람들.

▲ 1935년, 비를 막기 위해 기름을 먹인 종이로 만든 갈모를 쓴 노인. 원래 이름은 갓 위에 쓰는 갓모자(笠帽)이며, 비 올 때 써서 ‘우모(雨帽)’, 기름종이로 만들어서 ‘유모)油帽)’라고도 불렀다.

▲ 1931년, 평양의 파괴된 중국인 소유의 건물. 만보산 사건(萬寶山事件)의 여파로 인해 반중감정이 폭발하면서 평양에서 폭동이 일어나 대로변의 중국인 가옥과 상점들이 파괴되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 1931년, 폭동의 여파로 뼈대만 남은 중국인 소유 건물.

▲ 1931년, 평양화교학살 사태의 진압을 준비하는 일본 경찰.

▲ 1935년, 상복을 입은 노인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다.

▲ 1932년, 눈 쌓인 사찰의 모습. 절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녀가 물로 사용하기 위해 눈을 뜨고 있다.

▲ 1935년, 삿갓을 쓴 남성. 비나 햇볕은 가리기 위해 전통적인 삿갓을 쓰고 있지만 발은 짚신을 밀어낸 고무신을 신고 있다.

▲ 1932년, 강가에서 남성들이 빨래의 물을 짜고 있다. 옷가지가 아닌 큰 빨래들만 주변에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들은 빨래를 대행해주는 업자들로 보인다.

▲ 1936년, 한복을 입고 곰방대를 문 남성들이 돗자리를 펴고 낚시를 하고 있다.

▲ 1931년, 왕릉을 관리하는 직원들.

▲ 1931년, 또 다른 각도에서 본 왕릉. 석물의 모습으로 이곳이 파주 장릉(坡州 長陵)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仁祖, 1595~1649)와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1594~1636)의 합장릉이 있는 곳으로 사적 제203호로 지정되어 있다.

▲ 1932년, 수원화성 팔달문(八達門) 앞 거리.

▲ 1930년, 곰방대를 문 두 노인이 대화를 나누며 쉬고 있다.

▲ 1931년, 눈 쌓인 주택가 하천에서 빨래하는 한국 여성들. 세탁기가 없던 시절, 겨울이라도 물이 흐르면 강가나 하천에 모여 빨래를 하는 것은 일상적인 광경이었다.

▲ 1938년, 눈 덮인 평양 대동문(大同門) 풍경. 6세기 중엽에 건설된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현재 북한의 국보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 1932년, 신랑을 태운 결혼 행렬.

▲ 1932년, 신부를 이끄는 여성들의 행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