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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진작가가 촬영한 20세기 초 그리스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 프레데릭 보이소나스(Frédéric Boissonnas)는 역시 사진작가였던 부친 앙리 안토인 보이소나스(Henri-Antoine Boissonnas, 1833~1889)의 유지를 이어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프레데릭 보이소나스의 작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주제는 ‘그리스‘로, 그는 1903년부터 1933년까지 30년간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며 체계적으로 그리스의 풍경과 사람들을 기록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1
▲ 프레데릭 보이소나스(Frédéric Boissonnas, 1858~1946)


그리스와 사랑에 빠진 보이소나스는 총 14권의 그리스 관련 사진집을 출간했으며, 그의 파르테논 신전 사진들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저서 『건축을 향하여(Vers une architecture)』에서 사용할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3
▲ 1903년, 그리스 서부 아크라타(Ακράτα / Akrata) 마을 사람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5
▲ 1903년, 아크라타(Ακράτα / Akrata)의 시골길에서 수레를 끌고 가는 주민.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7
▲ 1903년, 아크라타(Ακράτα / Akrata) 마을의 집 내부.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9
▲ 1903년, 아크라타(Ακράτα / Akrata) 마을의 시장. 카메라가 흔하지 않았던 시대라 모두 구경을 나온 모습이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11
▲ 1903년, 아크라타(Ακράτα / Akrata)의 평범한 거리.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13
▲ 1903년, 그리스 케팔로니아섬에 위치한 아르고스톨리(Αργοστόλι / Argostoli) 앞바다. 아르고스톨리 항구는 케팔로니아섬의 주요 관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통해 섬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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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그리스 서부 아카이아(Αχαΐας / Achaea)에 있는 아로니아 산(Αροάνια / Aroania)의 목동.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17
▲ 1903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에 위치한 타이게토스(Ταΰγετος / Taygetos) 산맥의 험준한 풍경 속을 지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짐을 실은 당나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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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그리스 코르푸(Corfu) 지역 가스투리(Gastouri / Γαστούρι) 마을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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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가스투리(Gastouri / Γαστούρι) 마을의 여성들이 샘에서 물을 긷고 있다. 위쪽에 부착된 명판에 그리스어로 ‘ΠΗΓΗ ΑΥΤΟΚΡΑΤΕΙΡΑΣ ΕΛΙΣΑΒΕΤ(엘리자베스 황후의 샘)’이라고 새겨져 있다. 가스투리 마을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스 황후(Empress Elisabeth of Austria, 1837~1898)가 요양차 머무른 곳으로, 그녀의 거주지인 아킬레온 궁전(Achilleion Palace)도 위치해 있다. 황후는 궁전 건설로 인한 지역민들의 불편을 달래기 위해 이 샘을 기증했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황후의 이름을 새긴 명판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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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코르푸(Corfu)의 여성 주민들. 코르푸의 원래 명칭은 케르키라(Κέρκυρα / Kerkyra)지만 베네치아 공화국령 시대에 코르푸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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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코린트(Κόρινθος / Corinth)의 들판에서 사진작가 프레데릭 보이소나스(우측)가 목동과 우정의 건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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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코린트(Κόρινθος / Corinth)에서 성직자와 그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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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코린트(Κόρινθος / Corinth)에서 성직자와 가족들이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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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식사 중인 일반 가정집 모습.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33
▲ 1903년, 그리스 아카디아의 카리테나 마을(Καρύταινα / Karytaina) 여성들. 카리테나는 ‘그리스의 톨레도(Toledo)’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림 같은 풍경과 중세 분위기를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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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코키노필로스(Κοκκινόπηλος / Kokkinopilos)의 산악마을 거리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이 마을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올림포스 산의 남서쪽 경사면 해발 약 1,150m에서 1,250m 사이의 고도에 자리 잡고 있어, 올림포스 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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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카디아 현 고르티니아(Gortynia) 자치구에 위치한 산악마을 라그카디아(Λαγκάδια / Lagkadia)의 주민이 개에게 밥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39
▲ 1903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카이아 현의 산악마을 칼라브리타(Καλάβρυτα / Kalavryta)의 번화한 거리 풍경.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41
▲ 1903년, 메가 스필레오(Μέγα Σπήλαιο / Mega Spilaio) 수도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성직자들.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로 남자들만 출입이 허용되며, 공식 명칭은 성모 안식 수도원(Monastery of the Dormition of the Theotoko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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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올림피아 인근의 알페이오스 강(Αλφειός / Alpheios)에서 배를 타는 모습.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역사적으로나 신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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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비가 내리는 파르테논 신전(Παρθενών / Parthenon).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위치한 고대 건축물로, 아테네의 수호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에게 봉헌된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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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그리스 중부 코린토스 만 북쪽에 위치한 파르나스 산(Парнас / Parnassus) 정상의 목동들. 파르나스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리아쿠라(Λιάκουρα / Liakoura)로 해발 2,45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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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아크로폴리스(Ακρόπολη Αθηνών / Acropolis of Athens) 기슭에 모여있는 양 떼.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했지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가장 유명하여 일반적으로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면 아테네의 것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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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스팀팔리아 호수(Λίμνη Στυμφαλία / Lake Stymphalia) 인근의 농민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53
▲ 1903년, 에비아 섬(Εύβοια / Evia) 서부 연안에 위치한 할키다(Χαλκίδα / Chalkida)의 해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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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프레데릭 보이소나스가 아크로폴리스에서 사진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카메라의 크기를 보면 멋진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현재와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엄청난 준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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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피레아스(Πειραιάς / Piraeus)에서 요트를 타는 사람들. 현대에도 피레아스는 세계 3위 규모의 여객 항구로 연간 약 2천만 명이 이용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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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피레아스(Πειραιάς / Piraeus) 부두 풍경. 피레아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아테네의 주요 항구 역할을 해왔으며, 현대에도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거대한 해운 및 상공업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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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메테오라(Meteora)의 수도원에서 성직자들이 도르래를 이용해 사람을 끌어올리고 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는’이라는 뜻으로 사암과 역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기둥들이 해발 최대 600m까지 솟아 있으며, 이 바위 정상에 여러 개의 동방 정교회 수도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63
▲ 1908년, 사진작가 프레데릭 보이소나스가 메테오라의 공중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 도르래에 올라타 있다. (관련 글: 바를람 수도원을 오르는 도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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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파르테논 신전의 입구에 프레데릭 보이소나스가 기대어 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67
▲ 1908년, 펠리온 산(Pelion)의 서쪽 경사에 위치한 포르타리아(Πορταριά / Portaria)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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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방의 에데사(Έδεσσα / Edessa) 마을 어린이들이 골목에서 놀고 있다. 풍부한 수자원과 아름다운 폭포들로 유명하여 ‘물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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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아크로폴리스의 장엄한 풍경.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73
▲ 1911년, 에게해 남부에 위치한 아모르고스 섬(Αμοργός / Amorgos)의 여성들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이곳은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블루(The Big Blue)’의 촬영지로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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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크레타 섬 무르니에스(Μουρνιές / Mournies)에 위치한 베니젤로스의 생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 1864~1936)는 그리스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여러 차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현재도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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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아모르고스 섬(Αμοργός / Amorgos)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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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서마케도니아 주에 위치한 카스토리아(Καστοριά / Kastoria)의 저택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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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크레타 섬(Κρήτη / Crete) 남서부에 위치한 스피키아(Σφακιά / Sfakia) 풍경.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외세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 적이 없는 그리스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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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크레타 섬의 이라클리온 항구(Λιμάνι Ηρακλείου / Heraklion port). 이라클리온은 고대부터 지중해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도 활발한 여객 및 화물 운송과 함께 크레타 관광의 주요 관문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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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크레타 섬 남부 해안의 프레벨리(Πρέβελη / Preveli) 지역에서 여성들이 올리브 나무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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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크레타 섬의 학교로 보이는 건물과 아이들. 이 시기는 크레타가 오랜 오스만 제국의 지배와 자치국 시대를 거쳐 마침내 그리스 왕국에 공식적으로 병합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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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그리스 북서부 에피루스 지역 테스프로티아 현의 산악마을 케라미차(Κεραμίτσα / Keramitsa)에 있는 오래된 석조 다리와 그 위를 지나는 상인.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91
▲ 1913년, 그리스 북서부 에피루스 지역의 중심 도시인 이오안니나(Ιωάννινα / Ioannina)의 팜보티스 호수(Λίμνη Παμβώτιδα / Lake Pamvotis) 호숫가 풍경. 발칸 전쟁의 결과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약 482년 만에 해방되어 그리스 왕국에 막 편입된 시기이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93
▲ 1918년, 크레타 섬 북동쪽 엘룬다 만에 위치한 스피나롱가 섬(Σπιναλόγκα / Spinalonga)에서 목조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들과 짐을 실은 당나귀. 당시 스피나롱가는 한센병 환자 격리수용소가 있었는 고립된 지역이었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95
▲ 1920년, 그리스 아테네의 아티나스 거리(Οδός Αθηνάς / Athinas Street)에 늘어선 신발 가게들. 19세기 말부터 아테네의 소매업은 꾸준히 발전했으며, 특히 1922년 소아시아 재앙(그리스-터키 전쟁) 이후 많은 난민이 아테네로 유입되면서 상업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렇게 보이소나스의 작품은 현대 그리스의 정체성 형성과 유럽에서의 그리스 홍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그리스 관련 기록물은 약 13,000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테살로니키 사진박물관(Thessaloniki Museum of Photography)에 소장되어 있다. 97
▲ 1920년, 그리스 아테네의 자피온 정원(Ζάππειος Κήπος / Zappeion Gardens)의 한가로운 오후 풍경. 이곳은 근대 올림픽 부활의 염원을 담아 올림픽 관련 행사 및 전시장으로 만들어진 자피온 홀(Ζάππειον Μέγαρο / Zappeion Hall)에 딸린 정원이었다. 원래 왕궁의 정원으로 조성되었으나 1920년대부터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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