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⑬ 소방차 vs 소방마
1910년, 화재 현장으로 달리는 소방마의 위엄
엄청난 연막과 함께 세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마치 고대 로마의 전차경주를 연상시킨다.
사실 이것은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1910년경,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방서 보일러팀이 운용하는 증기 소방마차의 모습이다.
보일러가 발생시킨 수증기를 907kg짜리 실린더로 보내면, 이 압력으로 소방관들은 소화전이나 저수지 등의 수원에서 물을 빨아들이고 소방호스에 압력을 가하여 물을 뿜어 올렸다. 증기기관 덕분에 소방관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건물로 진입하는 대신, 거리에서 고층의 불을 끌 수 있게 되었다.
▲ 사진 속 ‘American Fire Engine Company’의 소방마차
– 관련 글: 1915년, 경성의 화재진압 모습
소방마(Fire Horse)와 소방관들의 유대감은 매우 깊었다. 재산과 인명에 관련된 문제인 만큼 최상급의 명마가 배치되었고, 소방관 1인당 말 한필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잘 훈련된 말들은 평시에는 소방서 뒤편의 마구간에 얌전히 있다가 경보가 울리면 어느새 소방마차의 앞에 와서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 1900년대 초, 캐나다 몬트리올 소방마들이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도 화재현장을 지키는 모습 ⓒ Library and Archives Canada
사진은 상당히 멋있게 나왔지만 사실 이 시기는 소방마의 황혼기였다. 1890년대까지 운송과 교통수단의 왕으로 군림하던 말들은 도시환경오염의 주범이기도 했으며, 1910년대에는 빠르게 자동차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 관련 글: 말똥으로부터 도시를 구한 자동차
이에 소방마들도 소방차로 대체할 계획이 세워졌지만 대중들은 이 명마들을 굳이 아까운 세금을 들여 교체하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아했다.
결국 1912년 7월 11일, 샌프란스시코 리치몬드 디스트릭트에서 소방위원회 및 감독위원회의 위원들과 공무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소방차와 소방마차의 대결이 벌어졌다.
▲ 첫번째 사진의 잘라내지 않은 원본사진. 좌측을 보면 이미 자동차가 다니던 시대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승부는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대결처럼 뻔했다.
다음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1면은 ‘끝나버린 소방마의 운명, 자동차의 우위 입증‘이라는 헤드라인을 실었다.
다년간의 훈련을 통해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던 소방마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을 헐떡이며 소방차를 쫓아가 봤지만, 추월은커녕 소방차는 두 블록이나 앞서 나갔고 이미 소화전에 당도해 물을 뽑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 뉴욕 소방청에 배치된 첫번째 소방차 ‘1909 Knox high-pressure hose wagon’
소방차가 소화전까지 당도해 물을 뿌리는 데에는 2분 20초, 소방마차가 같은 거리를 달리는 데는 3분 55초가 소요되었다. 1초가 소중한 화재진압에서는 너무 현격한 차이였다.
이로써 말에게 달려있던 화재진압의 책무는 빠르게 자동차로 전환되었고, 1921년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말 다섯 마리가 경매로 판매되며 소방마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