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㊱ 독일 국회의사당의 낙서
아래의 사진은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Reichstag building)이 불에 그을리고 온통 낙서로 가득한 모습이다.
이는 세계 제2차 대전의 ‘베를린 공방전‘이 끝난 이후 승리한 소련군 병사들이 국회의사당 건물에 들어와 구석구석에 키릴 문자로 온갖 낙서를 써넣은 것이다.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 점령과 낙서
1945년 4월 20일, 소련은 최후의 공격을 위해 제3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진입했다.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늦어도 5월 1일까지 독일 국회의사당에 소련의 국기를 꽂고 승리를 선언하기를 원했지만, 건물에는 독일군 잔당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 베를린으로 진군하는 소련군 탱크 ⓒEvgeny Khaldei
전쟁에 사실상 승리한 소련군이었기에 오히려 전투의지는 낮았다. ‘며칠만 살아있으면‘ 고향으로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훈장보다 더 큰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1945년 4월 30일, 소련군 지휘관들은 특공대를 꾸려 야간공격을 감행했고 결국 그날밤 10시 40분에 미하일 미닌(Mikhail Minin, 1922~2008)을 비롯한 군인들이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국기를 꽂았다. 하지만 칠흑 같은 밤이었기에 사진 촬영은 실패했고 독일저격수에 의해 깃발은 곧 격추되었다.
이후 5월 2일에 다시 한번 소련국기를 게양하는 사진을 촬영한 것이 오늘날 2차 대전 승리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 소련국기가 독일 국회의사당에 게양되고 있는 모습
점령이 완전히 끝나자 수많은 소련군인들이 의사당 건물로 몰려왔다. 술과 기쁨에 취한 군인들은 건물 내부의 모든 벽과 기둥은 물론 조각품에까지 낙서를 휘갈겼다.
▲ 독일 국회의사당의 벽에 낙서하는 소련군인
이들은 마치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처럼 각자의 이름과 고향을 적는가 하면, ‘꿈은 이루어진다!‘ 또는 독일군에게 훈계하듯이 ‘뿌린 대로 거두리라‘와 같은 잠언도 적어 넣었다.
▲ 국회의사당을 가득 채운 키릴문자
군인들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성적인 표현도 패전국에 대한 조롱의 문구로 새겨지기도 했다.
덮였던 낙서, 다시 드러나다
파괴된 국회의사당은 분단 후 방치되다가 1960년대에 첫 번째 보수를 담당한 건축가 파울 바움가르텐(Paul Baumgarten, 1900~1984)에 의해 석고패널로 덮여버렸고 그렇게 잊혀졌다.
▲ 1945년 6월 3일, 파괴된 국회의사당
베를린 장벽이 붕괴한 이후인 1995년, 통일 독일의 의회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은 재건에 들어갔다. 작업을 맡은 인부들이 벽에서 석고 패널을 떼어내자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나타났고, 이 단어들이 ‘패전의 그날‘에 새겨진 굴욕임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다시 드러난 소련군의 낙서
다시 세상에 드러난 낙서는 패전 후 유린당했던 베를린의 기억을 끄집어냈고, 독일 정치인들은 ‘아픈 기억을 덮고 다시는 보이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과 ‘이것도 독일 역사의 일부이며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만든다‘라는 주장으로 갈렸다.
▲ 재건된 독일 연방의회(Deutscher Bundestag)건물
결국 논쟁 끝에 국회의사당의 함락은 ‘독일의 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인의 해방을 의미한다‘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낙서는 인류 모두에게 역사적 교훈을 주는 유물로 오늘날 독일 연방의회(Deutscher Bundestag)의 벽을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