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02일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의 옛 모습

1998년에 개관한 ‘아트선재센터(Art Sonje Center)’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김선재가 1990년에 사망하자 모친 정희자가 설립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건물의 주변은 옛 조선시대의 궁궐과 한옥, 명사들의 집터들이 즐비한 곳인지라 이 터 역시 평범하지 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것임은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 관련 글: 김옥균의 집터, 정독도서관

 

그렇다면 아트선재센터가 있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번지(율곡로 3길 87)는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일까.

 

그렇다면 아트선재센터가 있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번지(율곡로 3길 87)는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일까. 1
▲ 아트선재센터 위치 ⓒkakaomap


‘소격동’
이란 지명은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昭格署)라는 관청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근처 도로의 이름도 오래전에는 ‘소격서 골목’으로 통했다.

 

1932년에는 이곳에 안채는 조선식 기와집, 사랑채는 산뜻한 서양식으로 지어진 가옥이 들어서 있었고 수많은 자동차들이 마당을 끊임없이 오가는 풍경이었다.

 

이런 분위기로만 봐도 꽤 명망 있는 인물이 주인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일제시대 밀정으로 유명했던 배정자(裵貞子)의 세 번째 남편이었던 박영철(朴榮喆, 1879~1939)이 살고 있었다. 그는 1907년 아홉 살 연상이었던 배정자와 떠들썩하게 결혼 후 5년 만에 이혼하였기 때문에 1930년대에는 완전한 남남이었다.

 

■ 관련 글: 일제의 밀정, 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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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정자(좌)와 박영철(우)


이 시기 박영철은 관직에서는 은퇴했지만 은행과 기업체의 이사로 초빙되고 있었고, 1931년에는 상업은행 두취(頭取, 은행장)로 취임해있었다. 집을 들락거리던 수많은 자동차들은 은행원들과 돈이 필요한 기업의 직원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시를 좋아했기에 낭송회를 자택에서 열면서 내로라하는 글재주꾼들도 많이 찾아든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철이 50세 때인 1929년에 펴낸 자서전 ’50세의 회고(五十年の回顧)’에는 이 집의 전 주인도 밝혀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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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철 『五十年の回顧』 속 표지


‘소격동 144번지’는 1890년까지만 해도 이름 없는 터였지만 고종 시절 궁내부대신이었던 이경직(李耕稙, 1841~1895)이 거주하면서 명망 있는 저택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경직은 명성황후의 외사촌으로 한창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기에 명사는 물론 재상들까지 이 집을 방문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으나 을미사변 때 황후와 함께 집주인이 사망하자 명당으로써의 지위도 흔들린다. 심지어 유족과 자손들까지 불길한 일이 생긴 이 집을 기피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144번지는 이완용(李完用)의 처남이자 민병석(閔丙奭)의 외사촌이었던 조민희(趙民熙, 1859~1931)에게 넘어갔다.

 

조민희는 한일합방 당시 일본 천황으로부터 거액의 은사금을 받은 조선귀족이었으나 가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망신을 샀다. 당시에는 이 집에 장안의 유명한 골패꾼(骨牌, 조선 후기 도박)들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하니 파산의 이유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관련 글: 조선귀족들의 몰락

 

조민희가 빈털터리가 되어 물러나자 만석꾼으로 유명했던 김종근(金鍾根)이라는 인물이 재산을 털어 이 집을 사들였지만 얼마 못가 물러났고, 그 후 애오개(아현동)의 유명한 만석꾼 차석희(車錫禧)가 차지했지만 그 역시 자식들이 방탕하게 재산을 탕진하여 파산하면서 ‘144번지의 저주’라도 있는 듯 집주인들이 불운하게 망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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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철이 거주하던 시절의 정문 모습


그 후 해방 전까지 집을 차지한 이가 바로 전라도 출신의 백만장자로 유명했던 상업은행장 박영철이다.

 

신기한 것은 이곳의 번지수가 144번지인데 공교롭게도 당시에는 전화번호도 144, 박영철의 자동차 번호판도 144로 ‘숫자 4가 많은 것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원인‘이라며 주민들이 입방아를 찧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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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선재센터 (2021년 7월)


1998년 이후 터를 차지하고 있는 아트선재미술관 역시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불운이 닥치기도 했으나 이제는 개인의 주택이 아닌 재단 소유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 되면서 대중들과 다양한 행사를 향유하며 좋은 기운을 쌓아가고 있다.


– 참고문헌:
• 中央日報. 昭格洞에 잇는 朴榮喆氏家由來 (193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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