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마르티니크(Martinique) 화산 폭발

마르티니크의 화산은 플레 산(Mount Pelée) 혹은 몽따니으 플레(Montagne Pelée)라고 불리는 높이 1397m, 직경 15km의 화산으로 ‘서인도 제도의 파리’라고 불리던 마르티니크 섬 북부의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다.

 

1902년의 화산 폭발로 화산재와 증기가 생피에르 시(市)를 덮쳐 3명을 제외한 전체 주민의 목숨을 앗아가 20세기 최악의 화산 피해 기록되고 있다.
 1902년 마르티니크 화산 폭발로 인한 피해자: 사망 약 28,000~30,000명(40,000명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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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 위치


몽펠레 산 분화의 역사:
 1635년 9월 15일, 프랑스가 최초로 이 섬에 왔을 당시 분화구 근처에 형성된 기둥과 흘러내린 용암으로 인해 식물의 피해가 보고되었다. 이후 1792년, 1851년, 1902년, 1929년에 4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다. 당시에도 현지 원주민들에게는 ‘불의 산(fire mountain)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현대 지질학 연구로 지난 5,000년간 약 30번 이상의 화산 분화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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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플레 산(Mount Pelée)

 

화산 폭발 전, 카리브해의 낙원 생피에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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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폭발 전, 생피에르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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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폭발 전, 생피에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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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두와 두 개의 첨탑이 보이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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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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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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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드로 예배당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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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흔느 후쥬(Morne Rouge)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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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탱 부둣가에 하역된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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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수수를 선적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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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의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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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적한 주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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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외곽의 다리

 

화산 분화의 징조

 

• 1889년, 간헐적인 분기공(噴氣孔, fumarole)과 분화구가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 1902년 1월, 화산의 분기공이 급격하게 증가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다.

• 4월 23일, 화산의 정상에서 작은 폭발이 발생한다.

• 4월 25일, 부석과 재를 포함한 큰 구름이 생성되었다.

• 4월 27일, 끓는 물소리가 지하에서 들려왔으며 유황냄새가 진동했다.

• 5월 2일 밤 11시, 큰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만들어졌다. 폭발은 5~6시간 간격으로 이어졌다.

• 5월 3일, 불안에 떠는 많은 시민들이 증기선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기로 한다.

• 5월 4일, 계곡의 물이 범람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 5월 5일, 독충과 뱀들이 마을에 들끓어 대략 50명(대부분 아이들)의 주민들과 200마리의 가축이 독사에 물려 사망하였다. 바다가 갑자기 100m 정도 물러난 후 도시의 저지대를 덮쳤다. 뜨거운 화산쇄설물이 빈민가와 공장을 덮쳐 25명의 피해자를 낳았고, 생피에르와 외부의 통신라인을 모두 끊어버렸다.

• 5월 6일, 뜨거운 수증기가 만들어낸 호우가 계곡에 내렸고 화산재와 먼지가 도로에 카펫처럼 쌓였다.

• 5월 7일, 화산활동은 진정 상태에 들어갔다. 최후의 폭발을 앞둔 응축이었다.

• 5월 8일 오전 7시 50분, 화산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하였으며 1분 안에 생피에르 전체를 덮쳤다.


5월 11일 선거를 앞둔 루이 무테(Louis Mouttet, 1857~1902) 주지사는 주민들의 동요와 마을 이탈을 막고자 했다.

 

그는 직접 조사대를 파견해 화산의 상태를 확인하라고 하였으나 이 조사대에서 가장 과학적 지식이 뛰어난 사람은 고등학교 교사에 불과했다. 그들이 올린 보고서는 ‘생피에르의 안전은 완벽히 보장된다’였다. 훗날 그들은 분화구의 상태만을 참조했을 뿐, 화산의 갈라진 틈의 존재를 간과한 것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보고서가 신문에 실리자 주민들은 안심했으며 주지사는 도로와 부두로 경찰들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위 지도자와 지식층들의 막중한 책임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심지어 생피에르는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소문이 나서 다른 지역에 살던 사람들까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미리 생피에르를 떠난 사람들은 몇몇 부자들에 국한되었다.

 

이 상황은 루이 무테 주지사의 재선에 미친 광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을 예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지금도 백두산이 분화를 하니 후지산에 균열이 발견되었느니 해도 막상 터지기 전에는 뜬소문으로 치부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 오히려 주지사 입장에서는 주민들의 동요를 잠재우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전염병이 돌면 정부에서 과학적인 이론을 내세워 불안한 여론을 진정시키는 것처럼 ‘화산의 폭발’을 과학의 힘을 빌려 음모론으로 치부했던 셈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화산의 폭발을 연구하고 예측할 지리학자도 데이터도 거의 없었다. 플레 산 분화는 현대 화산학(volcanology)의 모태가 되었다.

 

화산 폭발의 순간


화산 폭발로 발생한 구름은 하늘을 뒤덮었다. 뜨거운 화산가스와 화산재는 반경 13km를 완전히 파괴했다.

 

1분 만에 1,075도에 달하는 압력파가 도시를 납작하게 짓누르며 모든 생명을 앗아갔다. 가열된 가스는 산소를 모두 연소시켜 대피소로 도망간 사람들까지 모두 질식시켰으며, 이 공기를 들이마신 사람들의 폐는 열기에 모두 녹아내렸다. 사고 수습을 하면서 발견된 와인병들이 열에 의해 기하학적으로 꼬부라진 것으로 당시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최초의 구조선은 포르 드 프랑스(Fort-de-France)로부터 12시 30분에 도착했다. 하지만 뜨거운 열 때문에 오후 3시까지는 생피에르에 접근이 안될 정도였다. 이후 8월 30일까지 화산재 낙진과 폭발이 이어졌으며, 화산활동은 1905년 10월이 되어서야 완전히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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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 타워(The Tower of Pélee)


10월에는 용암 돔(Lava Dome)이 분화구에 만들어졌다. 플레 타워(The Tower of Pélee)라고 명명된 이 용암돔은 화산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용암돔으로 알려졌으며, 100~150m의 둘레와 300m 이상의 높이까지 자라났다. 밤에는 균열 사이로 붉은 용암 빛을 내던 플레 타워는 11개월 후에 무너져내려 지금은 볼 수 없다.

 

화산 폭발,  지옥으로 변한 생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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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분화로 나오는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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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분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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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 몇 시간 전, 근처에 왔다가 화를 당한 로라이마(Roraima)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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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화 후 폐허가 된 생피에르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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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파괴된 생피에르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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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 후의 생피에르를 내려다보는 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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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인근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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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생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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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벌판으로 변해버린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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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북부, 190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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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남부, 190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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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북부, 190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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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190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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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있는 가축들, 190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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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석조건물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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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상처럼 되어버린 피해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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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피에르 거리의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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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대만 남은 건물의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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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식민지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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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지역을 둘러보는 조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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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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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성당의 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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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통신국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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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발로 날아간 성모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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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루시아에 내리는 난민들

 

유명인의 죽음


화가 폴 머워트(Paul Merwart)가 이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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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머워트와 추모비


폴란드계로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해군에 고용되어 주로 프랑스 식민지를 옮겨 다니며 풍경을 화폭에 담거나 프랑스의 주간 화보 ‘릴뤼스트라시옹(L’Illustration)’에 기고할 그림을 그리는 당대의 유명화가였다.

 

0.0001%의 생존자들


화산 폭발의 직접적인 피해지역에서의 최후의 생존자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이들 외에도 사고 직후 도시의 변두리에는 생존자가 꽤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부분은 심한 화상을 입고 있거나 잔해더미에 깔려 중태였기에 며칠 후 모두 사망했다.

 

1. 루드거 실바리스(Ludger Sylbaris, 1874~1929)


루이 오귀스트 시파리스(Louis-Auguste Cypar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27세의 노동자.


주점에서 싸움 중 칼로 사람을 찔러 복역 중이던 그는 평소에도 술주정뱅이로 골칫덩어리여서 경찰은 지긋지긋한 이 인간을 독방에 처넣었는데 결과적으로 생명의 은인이 되어준 셈이었다. 독방은 탈출을 막기 위해 두꺼운 벽으로 지어졌고, 화산의 반대편으로 매우 좁은 출입구만이 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방공호 역할을 해주었다.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해도 열기와 좁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빛 때문에 직감적으로 화산 폭발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고열에서 살아남은 실바리스는 오줌과 빗물을 마시며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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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드거 실바리스와 그가 있던 독방


화산재에 생매장된 그는 사고 4일 차인 5월 11일, 극적으로 구출되었으며, 끔찍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덕에 사면되었다.

 

석방 후 그는 바넘&베일리 서커스단(Barnum & Bailey Circus)을 따라다니며 끔찍한 사고의 생존자로서 화상을 보여주고 사고 상황을 들려주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다가 1929년 파나마에서 사망했다. 이로 인해 실바리스는 ‘역사상 최초의 단독 흑인 쇼’ 한 흑인 남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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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 전단지


폐쇄된 지하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기에 그가 저지른 범죄가 단순 폭행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화산 폭발로 모든 자료와 목격자들이 사라졌기에 정확한 죄목은 알 수 없다.

 

참상의 기억을 잊고 조용히 살려했던 다른 생존자들과는 달리 생존의 기억으로 밥을 먹고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하감옥에 있었고 3일이나 잿더미 아래에 있었기에 눈으로 본 참상 순간의 기억은 없었다. 또한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극적인 타이틀로 쇼를 하였으나 이것 역시 거짓이었다.

 

2. 레옹 콩페르 레앙드르(Léon Compere-Léandre: 1874~1936)


도시 외곽에 살던 젊은 제화공.

 

분화의 순간 집으로 도망쳐 계단을 올랐는데 계단의 두꺼운 벽 덕분에 순간적인 열풍으로부터 살아남았다. 분화가 잦아진 틈을 타 6km 떨어진 퐁-생드니를 향해 달려가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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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원에 의해 포르 드 프랑스로 보내진 그는 충격으로 횡설수설하여 미친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레옹을 유일한 생존자로 판단한 경찰은 그에게 총을 지급하고 약탈자로부터 생피에르를 보호하기 위한 감시원으로 임명하였다. 5월 20일까지 임무를 수행한 그는 끔찍한 기억을 잊고자 모흔느 후쥬(Le Morne-Rouge)로 거주지를 옮겨 정착하였다.

 

1902년 8월 30일, 이번에는 동남쪽으로 화산의 증기가 또다시 덮쳐 1,400명의 피해자가 나왔고 모흔느 후쥬에서만 800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살아남았으며 1936년 62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3. 아비브라 다 이프릴르(Havivra Da Ifrile)


아비브라라는 어린 소녀는 사고 날 아침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모의 가게에 가던 도중에 폭발을 목격했다. 본능적으로 해변으로 달려가 정박되어있던 오빠의 보트에 기어올라 근처에 있던 해안동굴로 탈출을 시도했다.

 

증언에 따르면 탈출 당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끓어오르는 용암이 마을을 덮치는 모습과 비명을 지르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날아온 돌과 화산재가 보트에 떨어졌지만 운 좋게 동굴에 도착했고 곧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전의 마지막 기억은 빠르게 상승하는 수위로 인해 동굴의 천장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비브라는 3km를 표류하다 프랑스 순양함에 의해 발견되었다.

 

로라이마(Roraima)호와 배들의 침몰


로라이마(Roraima)호는 불행하게도 폭발 몇 시간 전, 생피에르 항에 도착했다. 화산 폭발의 열기는 엄청나서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정박했음에도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근처를 표류하다가 며칠 후 침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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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한 배들의 현재 위치

 

거대한 분화를 목격한 선장은 항해사에게 급히 출항을 명령하였으나 그 말과 동시에 배는 순식간에 파괴되며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급기야 보일러가 폭발하며 돛대는 칼로 자른 듯이 잘려나갔다.

 

승무원이었던 제임스 테일러의 증언에 따르면, 배의 갑판이 온통 뜨거운 열과 재로 덮여있었으며 쓰러진 사람들이 물을 요구하여 물을 주었으나 녹아버린 기관지로 인해 물을 마실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열기로 인해 바닷물도 뜨거워질 정도였으며 생존자들은 침구나 도구 상자로 뗏목을 만들어 탈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가운데 24명만이 구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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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라이마호의 현재모습과 예상도


침몰한 로라이마호는 72년이 지난 1974년 미셀 메트리(Michel Météry)에 의해 발견되었다. 현재 수심 약 46m 해저에 침몰해 있으며, 화산 폭발로 인해 침몰한 당시의 배들은 끔찍한 사고를 뒤로하고 세월이 무상하게 지금은 다이버들이 선망하는 베스트 탐험지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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