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9일

1951년, 영국제(Festival of Britain)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영국제)은 1951년 5월부터 9월까지 영국 전역에서 개최된 박람회였다.

 

1947년 영국 정부는 1851년에 열린 대전람회 10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2차 대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재건의 희망을 주고 과학, 기술, 산업디자인, 건축 및 예술에 대한 흥미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축제를 조직했다.

 

수도 런던의 사우스뱅크 지역이 영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축하할 장소로 선택되었고, 이곳에 지어진 돔 오브 디스커버리(Dome of Discovery)가 전시회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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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엠블럼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은 국제적 주제보다는 자국인 영국을 위한 전시회였으므로 대부분의 관람객이 영국인이었고 해외 방문객도 대부분 재외 영국인들이었다.

 

당시 영국 인구 4,900만 명 중 절반이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을 관람하였고, 그중 약 천만명의 유료 관람객이 입장하였다. 특히 가장 인기 있었던 플레져 가든의 경우 6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예상을 훌쩍 넘는 803만여 명이 방문하였다.

 

오늘날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은 전후세대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데 큰 임팩트를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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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래져 가든 포스터


정치적으로는 1950년 총선에서 승리한 노동당이 집권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밀어붙이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축제로 간주되어 보수당은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의 개최를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음모론과는 달리 노동당은 가을선거에서 패배하였고, 축제 직후인 1951년 10월 총리가 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은 ‘사우스뱅크 지역 부지를 깨끗이 정리하라’는 지시와 함께 전시회의 상징이었던 스카일론도 해체하여 고철로 팔아버렸다.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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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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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 왼쪽의 스카일론(Skylon)은 전시회의 상징으로 알루미늄으로 도금된 철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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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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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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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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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된 메인 전시장 돔 오브 디스커버리(Dome of 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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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의 분수와 조각상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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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내의 야외 카페에 앉아있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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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내의 야외 카페에 앉아있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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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아몬드 채굴 전시장 근처의 장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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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전시장의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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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내에 설치된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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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객들이 배터시 공원(Battersea Park) 내의 플레져 가든에 슈웹스(Schweppes)사가 설치한 인공동굴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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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의 관계자가 한 관람객 여성과 대화하고 있다. 귀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 1900~2002) 왕비. 바로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의 아내이자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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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서 바라본 템즈강의 야경. 왼쪽에 빅 벤(Big Ben)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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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서 바라본 템즈강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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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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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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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열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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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기간 동안 컬러전구로 장식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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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러전구로 장식된 심포니 오브 라이츠(A Symphony of L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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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의 상징 스카일론(Skylon), 케이블로 지지된 시가모양의 알루미늄 탑은 바닥에서 15m 떠 있었으며 높이는 90m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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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스카일론은 노동당의 엠블렘(위)에서 따왔다는 의혹이 있었다. 전시회가 끝난 후 보수당 출신 총리 윈스턴 처칠의 명령에 따라 폐기되어 고철로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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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객들이 보라색 조명의 분수를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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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티벌 오브 브리튼 조명분수 배터시 공원(Battersea Park) 내의 플레져 가든의 조명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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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시 공원(Battersea Park) 내의 플레져 가든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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