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을 지킨 반려동물들
2022년 9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끝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제는 완전히 넘어간 느낌이다.
영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엘리자베스 2세를 추모하는 가운데, 그녀와 함께했던 반려동물들도 카메라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남겨진 웰시 코기와 반려견들
여왕의 반려동물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영상에도 출연한 웰시 코기(Welsh Corgis)들이다.
▲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영상
엘리자베스 2세가 처음으로 코기와 사랑에 빠진 것은 일곱 살이었던 1933년. 부친 조지 6세(George VI, 1895~1952)가 기르기 시작한 ‘두키(Dookie)’가 그 주인공이었다.
▲ 어린시절의 엘리자베스 2세와 ‘두키’
두 번째로 맞이한 코기가 ‘제인(Jane)’으로 영국 왕실이 소유한 30마리에 달하는 코기는 대부분 제인의 후손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인의 혈통은 2018년 4월에 ‘윌로우(Willow)’가 사망하면서 끊어졌는데, 이때 엘리자베스 2세는 큰 충격을 받았고 고령이 된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남아있게 될 반려견들이 걱정되어 더 이상 입양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18세 생일에 부친이 선물한 수잔(Susan)
하지만 80년 이상 함께한 코기들은 버킹엄 궁전이나 윈저 성처럼 이미 왕실과 동의어가 되어 있었다.
이후 2021년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공(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1921~2021)이 입원하자 차남 앤드루 왕자(Prince Andrew, Duke of York)가 ‘무익(Muick)’과 ‘퍼거스(Fergus)’라는 두 마리의 코기를 여왕에게 선물하면서 왕실의 코기 혈통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중 퍼거스가 선천적인 심장이상으로 두 달 만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자, 6월에 앤드루 왕자가 다시 ‘샌디(Sandy)’라는 코기를 선물하면서 짝을 이루었다.
▲ 수잔은 엘리자베스 2세의 신혼여행에도 동행했다.
장례식 생중계 당시, 윈저성에 도착한 주인의 관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애처로움을 안겨준 코기들이 바로 엘리자베스 2세의 마지막 코기 무익(Muick)과 샌디(Sandy)였다.
▲ 무익과 샌디. 무익은 여왕이 별세한 발모럴 성 근처에 있는 ‘무익 호수(Loch Muick)’에서 딴 이름이다.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의 영상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무익과 샌디 외에도 반려견 2마리가 더 있다.
▲ 2022년 2월 4일, 엘리자베스 2세가 플래티넘 주빌리 기념품을 전달받으며 캔디를 쓰다듬는 모습.
‘캔디(Candy)’라는 이름의 도기(dorgis)종과 2022년에 입양한 ‘리시(Lissy)’라는 이름의 코카스파니엘 종까지 총 4마리가 엘리자베스 2세가 남긴 반려견들이다.
▲ 2022년 9월 19일, 앤드루 왕자가 오랜 행사로 지친 무익과 샌디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
이중 무익과 샌디는 선물했던 앤드루 왕자가 다시 데려가고, 캔디와 리시는 엘리자베스 2세의 외동딸인 앤 공주의 손에 길러질 것으로 측근에 의해 전해졌다.
자유를 얻은 비둘기
온라인에는 흔히 과거의 황당했던 올림픽 종목으로 ‘비둘기 경주‘가 소개되는 글이 많다. 하지만 비둘기 경주는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되었을 뿐, 엄연히 오늘날에도 시행되고 있는 스포츠이다.
– 관련 글: 폐지된 과거의 올림픽 종목들
1896년에 설립된 영국의 왕립비둘기경주협회(Royal Pigeon Racing Association, RPRA)는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엘리자베스 2세가 바로 RPRA의 협회장이다.
▲ 1943년 2월 26일, 전서구를 날리는 엘리자베스 2세
동물학대 논란으로 인해 90년대 이후로 왕립비둘기협회는 꾸준히 회원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왕은 비둘기경주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왕립비둘기경주협회 측은 곧바로 과거 여왕을 알현했던 사진(위)을 SNS에 올리며 그동안의 후원에 감사를 표시했다.
▲ 엘리자베스 2세를 추모하며 비둘기를 방생하는 모습 ⓒJordan Pettitt
또한 왕실 소유의 비둘기를 사육하는 로열 로프트(Royal Lofts) 측은 햄프셔 주의 올턴(Alton)에서 96마리의 비둘기를 방생하는 의식으로 여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충직한 조랑말 엠마
엘리자베스 2세는 어린 시절 수영에 푹 빠져있었으나 부친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세녀로서 왕실의 각종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수영에 이어 그녀가 빠진 것은 ‘승마’였고, 실제로 타는 것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열리는 경마대회에는 여왕이 소유한 말들이 꾸준히 출전했다.
– 관련 글: 엘리자베스 2세의 수영 취미
엘리자베스 2세의 영구차가 장례식 당일 윈저성 앞 롱 워크(The Long Walk)를 지날 때 검은 조랑말을 데리고 나온 인물이 길가의 꽃밭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등장했는데, 바로 여왕의 애마 칼튼리마 엠마(Carltonlima Emma, 24)와 마부 테리 펜드리(Terry Pendry, 72)였다.
엠마의 등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항상 사용하던 흰색의 양가죽 안장이 놓였으며, 안장 위에는 사람을 대신해 여왕이 말을 탈 때 즐겨 착용했던 에르메스 스카프가 놓였다.
▲ 2015년,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서 엠마에 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북부가 원산지인 펠 포니(Fell Pony) 종인 엠마는 20년 넘게 여왕과 함께했다.
1952년부터 펠 포니 종에 애착을 가지고 소유했던 엘리자베스 2세는 1980년대부터는 펠포니협회(Fell Pony Society)의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을 정도.
▲ 피규어도 제작된 엠마
엘리자베스 2세가 마지막으로 엠마를 탄 것은 건강이 악화되어 스코틀랜드의 발모럴 성으로 떠나기 이틀 전인 지난 7월 18일이었다.
▲ 마지막 경례를 하는 테리 펜드리와 엠마
테리 펜드리에 따르면, 이날 엠마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도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엘리자베스 2세의 애마다운 자부심을 당당히 드러냈다.
그리고 영구차가 앞을 지나갈 때는 펜드리가 엠마를 안고 머리를 숙였는데, 순간 부동자세로 있던 엠마가 발을 살짝 들어 주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2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엠마
테리 펜드리는 이후 메일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분명 엠마는 이제 더 이상 여왕을 태울 수 없다는 육감을 느끼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