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평화로웠던 독일 베를린의 일상

1939년 6월경의 독일 베를린 번화가를 담은 사진.

 

전 유럽을 수년간 폐허로 만든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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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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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거리의 나치 조형물. 원래 린데 나무(Lindenbaum)가 늘어선 가로수길로 유명했으나 이 조형물을 위해 나무들은 잘려나갔다. 이 거리는 전쟁이 끝나고 예전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한편 거리를 지나는 2층 버스에 낯익은 코카콜라 로고가 보인다. 전쟁 전 독일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코카콜라는 전쟁 발발 후 독일로의 원료 수출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대체제인 ‘환타(Fanta)‘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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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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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들을 데리고 베를린의 거리를 산책하던 남자가 여행사 앞에서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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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과 사람으로 혼잡한 베를린의 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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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하게 단장된 베를린 거리의 보도를 시민들이 통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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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노점상에서 판매 중인 살아있는 생선을 구경하는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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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동품 보석(Juwelen Antiquitäten) 가게를 구경하는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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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의 복권가게에 줄을 선 사람들. 정면에 있는 사람에 의해 가려져있지만 가게 측면에는 제3제국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문양이 그려져 있다.

 

가게 상단에는 당첨금 ‘590만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 ℛℳ)’가 표기되어있다. 라이히스마르크는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된 파피어마르크(Papiermark)를 대체하기 위해 나온 통화로 1924년부터 1948년 6월 10일까지 통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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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에 발행된 100라이히스마르크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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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를 순찰하는 독일 기마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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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의 독일 국방군(Wehrmacht) 장교. 왼쪽 뒤편으로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매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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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자동차 업체 BMW의 베를린 매장. 전시된 차량은 BMW 321 카브리올레(BMW 321 Cabriole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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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 모터스(GM)의 캐딜락 매장. 지금 보면 클래식모델이지만 당시에는 최신형인 1939년형 캐딜락 플리트우드 60 스페셜(1939 Cadillac Fleetwood 60 Special)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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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롱 쾨링(Salon Köring)이라는 이름의 베를린 미용실 쇼윈도.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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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 설치된 작은 쇼윈도에 전시해놓은 신제품 구두를 구경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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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의 신문 가판대.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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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의 대로.

 

중앙에 서있는 탑은 높이 67m의 베를린 전승기념탑(Berliner Siegessäule)으로 원래 국회의사당 광장에 있었으나 아돌프 히틀러의 ‘세계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구상의 일환으로 1939년 이 자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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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베를린 거리의 모퉁이에 있는 게시판에서 신문을 읽고 있다.

 

부착된 신문은 1923년부터 독일의 패전기까지 발행된 반유대주의 주간지였던 슈튀르메르(Der Stürmer)로 30년대는 발행부수가 48만 부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슈튀르메르의 창업자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 1885~1946)는 덕분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종전 후 유대인 말살을 선동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고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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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튀르메르 신문과 뉘른베르크 재판정의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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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아이가 베를린 거리의 아동복 매장 쇼윈도를 구경하며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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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의 의류매장들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앙에 보이는 헤르피히 쇠네(C. A. Herpich Söhne)라는 곳은 독일의 모피의류업체로 1835년 창업한 이래 크게 번창하였으나 전쟁으로 쇠락하여 명맥만 유지하다가 2001년 폐업하였다. 1925년 이 회사가 보유한 모피에 대한 보험가치만 해도 5,500만 마르크였다. 이는 2023년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2억 2000만 유로(한화 약 2933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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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년 헤르피히 쇠네의 오셀롯 재킷을 입은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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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거리의 이동식 장난감 상점(Spielzeugschachtel). 맞은편에 보이는 울워스(F. W. Woolworth Company)는 지금은 백화점으로 유명하지만, 이 시기에는 저렴한 균일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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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의 유명 번화가 쿠르퓌르스텐담(Kurfürstendamm, 쿠담)을 오가는 여성들. 고급 모피의류를 두르고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등 풍요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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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의 콘디토레이(Konditorei)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콘디토레이는 빵을 파는 제과점과 카페가 결합된 형태로 영업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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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의 식당가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베를린 시민들.

 

중앙에 있는 크란츨러(Kranzler)라는 이름의 카페는 1825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제과업자 요한 게오르그 크란츨러(Johann Georg Kranzler, 1795~1866)가 창업한 곳으로 베를린 최고의 카페 중 하나였다. 전쟁 중 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1951년 사업을 재개하여 라인강의 기적과 서베를린 부흥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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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전 후 서베를린의 크란츨러(Kranzler)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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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란츨러 카페 앞을 지나가는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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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쿠르퓌르스텐담 거리의 관공서로 보이는 건물 울타리에서 시각장애인이 성냥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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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동물원(Zoologischer Garten Berlin)의 입구. 거대한 코끼리상이 있는 정문은 지금도 변함없이 남아있다.

 

여성들이 읽고 있는 큰 표지판에는 여느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먹이를 주지 마시오!(Füttern verboten!)’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위쪽의 작은 표지판에는 ‘유대인은 환영하지 않는다(Juden unerwünscht)’라고 적혀있다. 이 시기 베를린동물원은 유대인 이사진을 몰아내고 유대인 고객의 출입을 금지하는 방침을 세웠다.

 

– 관련 글: 국가사회주의 선전의 장이 된 베를린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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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베를린동물원(Zoologischer Garten Berlin)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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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캐피톨 극장(Capitol am Zoo)의 모습. 1939년 5월 10일에 개봉한 하랄트 폴센(Harald Paulsen, 1895~1954) 감독의 ‘에테르의 목소리(Die Stimme aus dem Äther)’의 포스터 간판이 걸려있다.

 

극장 건물에는 지금은 독일 자동차업체 아우디(Audi)의 로고로 남아있는 아우토우니온(Auto Union)의 로고와 매장이 보이고, 유명 도자기업체 마이센 도자기(Meissen porcelain)도 입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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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간판 속의 여배우 아넬리세 울릭(Anneliese Uhlig, 1918~2017)

 

극장의 포스터 속에 있는 아넬리세 울릭은 제3제국 시기에 인기배우로 떠올랐지만, 당시 선전부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1897~1945)의 정부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후 독일영화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후 미국인과 결혼한 울릭은 2017년 6월 향년 98세로 캘리포니아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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