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2월 29일

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5] 화중선(花中仙, 기생)

꽃은 꽃이니 화자(花字)하고의 인연이 대단하다. 결혼해서는 화순집이요, 나와서는 화중선이로다.

 

전라도 화순으로부터 경성까지 수십 년을 두고 산전수전을 다 겪을 동안에 어느덧 무정한 세월은 화중선의 꽃다운 나이도 삼십 줄을 피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속은 터져 유리창을 새로 닦아 놓은 것 같을지라.

 

(律)을 못하나 소리를 못하나 춤을 못추나 술을 못 먹나 몸가짐이 바르질 않나. 백기(百技)를 갖추었으니 가히 여중호걸이요 화중신선이로다.

 

그러나 쌍꺼풀 진 눈으로 살짝 웃고 고개를 돌릴 때면 예전의 장기가 그 속에서 나오는도다.

 

꽃은 꽃이니 화자(花字)하고의 인연이 대단하다. 결혼해서는 화순집이요, 나와서는 화중선이로다. 1
▲ 화중선(花中仙)


“북풍 설한에 내 몸이 죽으면 11세 된 아들 생각이 불현듯 나오 그려. 몸이 아파도 그 아이 생각이 나고..”

 

“집은 익랑골이라도 무부기조합(無夫妓組合)이 내 집이지요.”

 

“기생이 몇 번째냐고요? 무부기로 작년에 나왔을 때가 두 번째 기생이올시다. 그러나 기생 노릇도 여러 대를 두고 하니 문벌(門閥)은 온전하지마는 지질하기도 하옵디다.”

 

“다시 기생 나온 것에 대해 말씀하자면 가슴이 터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니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연회를 다녀도 손님들이 너무 젊은 사람들이면 재미가 없고 도리어 그 사람이 가엾다는 마음이 나옵디다… 세이만의(歲已晩矣)요, 시이거의(時已去矣)라. 치사봉조하(致仕奉朝賀)가 화류계에는 당연한 말은 아니지만…”

【每日申報. 藝壇一百人(五).화즁션 1914.02.01.】

– (律): 율. 음악을 뜻한다.
– 백기(百技): 온갖 기예.
– 익랑골(翼廊―): 서울특별시 종로구 익선동의 옛 지명.
– 무부기조합(無夫妓組合): 정해진 기둥서방이 없는 기생들의 단체.
– 문벌(門閥): 대대로 내려오는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 지질하다: 지루하다.
– 세이만의(歲已晩矣): 세월이 많이 지나버렸다.
– 시이거의(時已去矣): 시대가 이미 저물었다.
– 치사봉조하(致仕奉朝賀): 조선의 고위 관리가 치사(致仕: 퇴직)후 받았던 명예직. 기예가 많은 기생들이 나이가 들며 잊혀지는 것을 서글퍼하며 꺼낸 단어.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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