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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북한 평양의 명소를 촬영한 엽서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3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5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7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9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1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3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5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7
▲ 을밀대(乙密臺)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19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21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상공에서 촬영한 평양.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대동강 다리(1926년 완공)가 보인다. 이 다리는 1950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훗날 재건되었다.(아래 사진 참조) ▲ 1950년 12월 4일, 피난민들이 부서진 대동강 철교에 매달린 사진. 이 사진을 촬영한 AP 통신 종군기자 막스 데스퍼(Max Desfor, 1913~2018)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 현재의 대동강 철교 ▲ 평양 거리에서 전도 중인 기독교 선교사들. 뒤에 '숭실전문학교 전도관' 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 일제시대의 헤이조 신사. 헤이조는 일제시대 평양의 일본식 명칭이다. ▲ 평양 영명사(永明寺). 대동강 기슭의 이 절은 한국전쟁 중 파괴되었다.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을밀대(乙密臺)   ▲ 평양 모란봉에 있는 주점의 기생들. 엽서의 앞면이다. 위 엽서의 뒷면에는 새해 안부 엽서로 발신자는 만주 투먼의 C. Ryang이라고 되어 있고, 수신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Nasehold이다. 쇼와 9년(1934년)이라는 도장이 우표에 찍혀있다.   ▲ 고구려 시대의 성인 현무문(玄武門)과 을밀대(乙密臺) ▲ 을밀대(乙密臺) ▲ 평양 박물관. 아래쪽은 식민지 시대 일제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며 위쪽은 한국의 전통기와를 얹었다. 이 건물은 6.25 전쟁(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았지만 철거되었다. 지금은 이곳에 모란각(식당)이 들어섰다.   ▲ 을밀대에서 바라본 최승대(最勝臺) ▲ 1930년대 평양 시내 23
▲ 1930년대 평양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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