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5일, 남베트남 시민들이 미군의 수송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북베트남군의 공세가 심화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려 했고, 특히 미국과 협력했던 시민들은 보복을 두려워해 필사적으로 대피하려 했다.
▲ 4월 21일, 부상당한 아이를 안은 군인. 북베트남군은 사이공에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로켓 공격을 시작했고 이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 4월 29일, 남베트남 시민들이 뉴포트(Newport) 지역의 미국 상점을 약탈한 후 물건을 들고 가고 있다. 사회 질서가 붕괴되면서 생존을 위한 약탈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 4월 29일, 베트남 난민들이 사이공 함락 하루 전 미국 대사관 앞에 모여 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대사관 주변에 모였고, 이들은 어떻게든 미국으로 대피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 4월 29일, 미 해병대원이 미국 대사관 벽을 넘으려하는 베트남인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날 대사관 주변에는 약 1만 명이 모였고, 담을 통해 대사관 구내로 들어가려는 시도로 혼잡했다.
▲ 4월 29일, 대사관행 버스에 무작정 탑승하는 베트남인들. 미국의 초기 대피계획은 버스로 시민들을 탄손누트 공항의 DAO 시설로 이동시키는 것이었지만, 북베트남의 발빠른 공격으로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 4월 29일, 버스에 탑승하려는 베트남인들을 저지하는 미 해병대원. 제한된 수송 능력으로 모든 사람을 대피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장면은 곳곳에서 발생했다.
▲ 4월 29일, CIA 직원 O. B. 하르나게(O. B. Harnage)가 지아롱가 22번지 건물 옥상에서 헬리콥터로 베트남인들의 탑승을 돕고 있다. 이 사진은 네덜란드 사진작가 허버트 반 에스(Hubert van Es)가 촬영한 것으로, 훗날 사이공 함락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이 사진의 위치를 미국 대사관 옥상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CIA의 안전가옥이었다.
▲ 4월 29일, 이날 헬리콥터 조종사 로버트 캐런(Robert Caron)은 여러 차례 비행을 하며 대피자들을 구출했다. 옥상 대피는 ‘프리퀀트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 4월 30일, 담벼락을 오르는 남베트남 시민에게 M-16을 겨누는 미 해병대원. 사이공 함락 당일이 되자 상황은 더욱 절박해졌고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강화되었다.
▲ 4월 30일, 사이공 함락이 시작되자 버려진 군복들. 많은 남베트남 군인들이 북베트남군이 진격하자 급히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했다. 지켜야 할 나라가 사라지자 군대도 빠르게 해체되었다.
▲ 4월 30일, 사이공 주민들이 도시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하고 있다. 북베트남군이 도시에 진입하자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전투를 피해 탈출했지만 대부분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중 전투 지역에서 탈출한 부상당한 민간인들의 모습.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민간인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다.
▲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중 폭격을 받은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는 모습. 4월 28일 탄손누트 공항 폭격을 시작으로, 사이공 곳곳이 공격을 받았고 민간인 피해도 컸다.
▲ 사이공 함락 직전의 난민들. 약 13만 명의 남베트남인들이 미군의 도움으로 대피할 수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공산화된 베트남에 남겨졌다.
▲ 북베트남군의 진격을 피해 도망치는 남베트남 난민들의 모습. 20년이 넘는 전쟁 끝에 베트남은 공산 정권으로 통일되었고, 이후 수십만 명이 ‘보트피플‘이 되어 국외로 탈출했다.
▲ 4월 30일, ‘프리퀀트 윈드 작전’ 중, USS 핸콕 함(USS Hancock)에 대피한 남베트남 조종사와 가족. 많은 남베트남 조종사들이 자국 헬리콥터를 타고 미 해군 함정으로 탈출했다. 일부 함정에서는 공간 확보를 위해 착륙한 헬리콥터를 바다에 밀어넣기도 했다. 7,000명 이상을 대피시킨 프리퀀트 윈드 작전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헬리콥터 대피작전으로 역사에 남았다.
사이공 함락은 단순한 도시점령이 아닌, 미국의 베트남 개입정책의 종말과 냉전구도의 변화를 상징한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깃발을 꽂으면서 사이공은 공식적으로 함락됐고, 이후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의 공식 출범과 함께 호찌민시(City of Ho Chi Minh)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