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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특이한 직업 10가지

최종수정 : 2025-06-15 @23:01

1. 거머리 사냥꾼

중세시대 거머리 사냥꾼들은 단순히 거머리를 채집하는 것을 넘어 거머리의 종류와 용도를 구분하는 전문 지식을 보유했다. 1

 

중세시대 거머리 사냥꾼들은 단순히 거머리를 채집하는 것을 넘어 거머리의 종류와 용도를 구분하는 전문 지식을 보유했다.

 

거머리 치료법은 현대 의학에서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입증한다. 의료용 거머리(히루도 메디키날리스)는 특별한 항응고 성분인 히루딘을 분비하는데, 이는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거머리 사냥꾼들은 거머리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특별한 기술도 개발했다. 그들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특수 용기를 사용했으며, 거머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했다. 당시 최고급 의료용 거머리는 1파운드당 현재 화폐로 약 50달러에 해당하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2. 오물 처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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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오물 처리업자들은 ‘gong farmer’ 또는 ‘nightmen’으로 불렸으며, 이들의 작업은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1539년 헨리 8세 시대 영국 법령에 따르면 오물 처리업자들은 오직 밤에만 작업할 수 있었으며, 일반 시민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이들의 수입은 상당했는데, 15세기 후반 기준으로 톤당 2실링을 받았다. 이는 당시 숙련된 장인의 일주일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1844년 뉴욕의 경우 맨해튼에서만 연간 약 80만 입방피트의 배설물을 생산했는데, 이는 중형 자동차 트럭 5만 3천 대 분량에 해당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수집한 ‘night soil(배설물)’은 농업용 비료로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다. 일부 오물 처리업자들은 도시에서 수집한 배설물을 교외의 농장에 판매하여 추가 수익을 올렸다.

3. 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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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쥐잡이들은 단순한 해충 방제업자가 아니라 전염병 예방의 최전선에 서 있던 공중보건 전문가였다. 14세기 유럽에서 쥐가 옮긴 흑사병으로 약 3천만 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쥐잡이의 역할은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직업이었다.


13세기 쥐잡이들은 발레리안(valerian) 식물을 ‘쥐잡이 식물’로 불렀는데, 이 식물의 꽃가루는 쥐를 유인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또한 각 쥐잡이는 자신만의 비밀 배합법을 가진 ‘쥐 유인제’를 제조했으며, 이를 깃털로 덫 주변에 발라 사용했다.


중세 쥐잡이들은 함정, 구덩이, 소리 기반 방충제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쥐 휘파람으로, 갈대나 새 뼈로 만든 이 도구는 인간이 거의 들을 수 없는 고주파 소리를 내어 쥐들을 쫓아냈다. 일부 마을에는 전담 쥐잡이 피리 연주자가 있어 창고를 열기 전에 미리 연주하여 쥐들을 내쫓았다.

4.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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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값싼 금속을 황금으로 바꿔준다는 연금술의 핵심 물질)’을 추구하는 신비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훨씬 실용적이었다. 중세 연금술사들은 수은, 황 등 다양한 화학 물질을 실험하면서 근대 화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들이 개발한 증류법, 승화법, 용해법 등은 후에 제약학과 야금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금술이 이슬람 세계에서 크게 발달했다는 것이다. ‘alchemy’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 ‘Al-Kimiya’에서 유래되었으며, ‘elixir’ 역시 아랍어 ‘Al-iksr’에서 나왔다. 11~12세기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의 연금술 지식이 서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유럽 연금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연금술사들은 또한 최초의 ‘실험실’을 만든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작업실에는 증류기, 도가니, 천칭, 온도계의 원형 등 정밀한 실험 도구들이 갖춰져 있었으며, 이는 현대 화학 실험실의 전신이 되었다.

5. 흑사병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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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의사들의 독특한 부리 모양 마스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 도구였다. 긴 부리 안에는 정향, 계피, 건조 장미, 라벤더 등의 향료를 넣었는데, 이는 ‘오염된 공기(miasma)’를 차단한다고 믿어졌다. 놀랍게도 이러한 방법은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데, 향료의 강한 냄새는 벼룩을 쫓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흑사병 의사들의 치료법은 당시 의학 이론에 따라 체계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흑사병을 ‘독 이론’으로 설명했는데, 독성 물질이 체내에 들어와 병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테리악(Theriac)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비롯해 하제, 강장제, 해독제 등을 사용했으며 땀내기 요법도 적극 활용했다.

 

흑사병 의사의 급여는 상당했다. 1348년 기준으로 이들은 일반 의사보다 2~3배 높은 보수를 받았으며, 이는 위험 수당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흑사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이직률은 매우 높았다.

6. 매맞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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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소년 제도는 영국에서 에드워드 6세(1547~1553) 시대에 공식화되었으며, 이는 ‘신성한 왕권‘ 사상에 기반했다. 왕은 신이 선택한 존재이므로 다른 누구도 왕에게 손을 댈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자기 대신 매를 맞는 아이를 보면서 왕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간접적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행해진 제도였다.

 

찰스 1세의 매맞는 소년이었던 윌리엄 머레이(William Murray)는 후에 큰 보상을 받았다. 그는 성인이 된 후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상당한 토지를 하사받았다.

7. 죄식자(罪食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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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식자
(Sin-eater) 제도는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 웨일스와 잉글랜드 국경 지역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직업이었다. 1680년대 존 오브리의 기록에 따르면, 헤리퍼드셔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죽은 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했다.

 

이 의식의 절차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시신이 집에서 나올 때 빵 한 덩어리와 맥주 한 그릇을 시신 위로 건네주면, 죄식자가 이를 먹고 마셨다. 이때 6펜스의 사례금도 함께 지급되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죽은 자가 ‘사후에 떠돌아 다니지 않게 된다‘고 믿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죄식자는 1906년 래틀링호프에서 사망한 리처드 먼슬로우(Richard Munslow)였다. 흥미롭게도 그는 다른 죄식자들과 달리 부유한 농부였으며, 지역 공동체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이 역할을 자원했다고 전해진다.

 

인도 힌두교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있는데, 시바신이 ‘죄를 삼키는 자(papabhaksana)’로 불린다. 불교에서도 출가승들이 탁발을 통해 재가 신자들의 나쁜 카르마를 흡수한다는 믿음이 있어, 죄식자 개념은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8. 궁정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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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왕의 광대였다. 그는 말장난과 흉내, 풍자를 통해 진실을 전했다.


중세 광대들은 독특한 공연을 펼치는 것을 넘어 왕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2세기 문서에 따르면 광대들은 충성스러운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토지를 받기도 했는데, 이는 광대가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왕실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광대의 정치적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들은 왕에게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내용을 우회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에는 항상 위험이 따랐는데, 궁전의 모든 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왕에 대해 농담할 권리는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줄타기 같은 특권이었다.

9. 이발사-외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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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외과의사
제도는 1000년경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승들이 삭발(tonsureㆍ톤슈어)을 유지해야 하는 종교적 규정 때문에 각 수도원마다 이발사가 필요했고, 이들이 자연스럽게 간단한 의료 시술도 담당하게 되었다.


15~16세기 유럽에서 외과학은 별도의 의학 분야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내과의사들은 외과의사를 천한 기술자로 여겼다. 정식 의학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실제 수술은 이발사들이 담당했다.


1540년 영국 의회는 이발사 2명과 외과의사 2명을 주임으로 하는 ‘이발사외과의사 조합’을 공식 승인했다. 이발사들은 흰 가운을 입되 의사보다 짧게 입어 구분했으며, 이발소의 삼색등(빨강-동맥, 파랑-정맥, 흰색-붕대)은 이때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10. 맥주 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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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맥주 검사관(ale conner 또는 ale taster)은 도시나 교구에서 임명하는 공식 직책이었다.


리처드 2세 시대에 검사관이 맥주를 의자에 붓고 앉았다 일어나면서 끈적임으로 품질을 판단했다는 ‘가죽 바지 테스트’ 이야기는 전설에 가깝고, 실제 맥주 검사관들은 맛으로 품질을 판단했다. 스코틀랜드 윌리엄 1세 시대(1165~1214년)의 법령에 따르면, 맥주 검사관들은 ‘맛을 보는 시간에 배를 덜 채우는 것으로 맛을 보는 분별력을 잃지 말아야’ 했다.


1643년 영국에서 맥주세가 처음 도입된 후에는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율이 달라졌기 때문에, 검사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강한 맥주와 약한 맥주를 구분하는 것은 오직 검사관의 미각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술의 품질 관리를 국세청이 담당하고 있다. 모든 술은 국세청 주류면허센터의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으며, 이는 주세 징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주 1병의 경우 출고가 548원에 세금 619원이 부과되어 총 도매가가 1,167원이 되는데, 세금이 전체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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