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주한 파키스탄 대사의 딸, 누르 무카담 ‘참수 살인사건’

2021년 7월, 파키스탄에서 27세 여성이 동갑내기 친구인 남성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누르 무카담은 지난 7월 20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부유층 주거지(Sector F-7/4)에서 시신의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함께 있던 자히르 자페르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체포 후 수사 중이다.

 

특히 피해 여성은 주한 파키스탄 대사와 주 카자흐스탄 대사를 지낸 샤우카트 알리 무카담의 딸로 알려져 한국에도 크게 보도되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 피해자

이름: 누르 무카담(Noor Mukadam, نور مقدم)
생몰: 1993.10.23~2021.07.21
가족: 부친 샤우카트 알리 무카담(Shaukat Ali Mukadam)은 외교관. 한국대사로 2010년 8월 부임하여 2013년 11월까지 근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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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원에서 개막한 간다하라 파키스탄 사진전에 부인 카우저(가운데), 딸 누르와 함께 참석한 샤우카트 대사(2013.06.28.)

 

• 용의자

이름: 자히르 자페르(Zahir Jaffer, ظاہر جعفر)
생년: 피해자와 동갑으로 알려짐
국적: 미국, 파키스탄 이중국적
가족: 부친 자키르 자페르(Zakir Jaffer)는 파키스탄의 유명 건설업체의 CEO이며, 모친 아스마트 아담지(Asmat Adamjee)는 심리치료사로 부유층 가문 출신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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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해 용의자 가족

 

두 사람은 오랜 친구일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로 알려졌다. 또 용의자는 성희롱 사건으로 영국에서 추방된 전력이 있으며, 전과기록은 없지만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이 출동했다는 증언이 있다.(이는 현재 파키스탄 경찰 측이 미국과 영국 측에 관련 서류 요청 중)

 

사건 개요


사건은 지난 용의자 자히르가 뉴욕행 편도항공권을 예매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 7월 18일, 13:00 – 자히르는 7월 19일 오전 3시 50분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었으며, 18일 오후 1시경 공항으로 갈 택시를 미리 예약했다.

 

2. 7월 18일, 저녁 – 자히르는 외출 중 어린 시절부터 아는(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연인이었다가 결별했다고 함) 사이였던 누르 무카담에게서 두 달 만에 문자가 왔다. 그는 곧바로 누르와 통화했는데 아마 ‘출국하기 전에 우리집에서 마지막으로 보자’는 식의 만남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7월 18일, 21:05 – 네이벌 앵커리지(Naval Anchorage)의 자택에 있던 누르는 오후 9시 5분 집을 나서 자히르의 집으로 향했다.

 

4. 7월 18일, 21:45 – 자히르의 집으로 가는 동안 ‘지금 집에 있어?’라며 누르가 두 번이나 문자를 보낸다. 그때까지는 전혀 강압이나 위협적인 상황은 없었던 상태로 추정됨.

 

5. 7월 18일, 22:00 – 누르가 자히르의 집에 도착. 자히르는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여행 날짜를 변경할 수 있는지 문의한다. 하지만 날짜가 너무 임박했기에 예약변경은 불가능했고 일단은 예정대로 비행기를 탄다고 말한다.

 

6. 7월 18일, 23:00 – 낮에 예약한 택시가 도착. 밤 11시 15분, 일단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대기하던 기사는 11시 36분에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7. 7월 19일, 00:07 – 택시기사는 자히르로부터 ‘그냥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1000루피를 지불받았다.

 

8. 7월 19일, 01:40 – 택시기사가 자히르에게 ‘돈을 받았으니 혹시 마음이 바뀌면 다시 불러달라’고 말함.

 

9. 7월 19일, 02:00 – 자히르가 마음이 바뀌었다며 다시 택시를 호출.

 

10. 7월 19일, 02:15 – 자히르가 맨발 상태의 누르를 데리고 나와 택시를 탐. 공항으로 가던 중 지하도에서 ‘제시간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다’며 다시 차를 돌리라고 요구.

 

11. 7월 19일, 02:35 – 택시는 두 사람을 다시 집 앞에 내려준다. 기사는 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누르는 택시에 타고 있는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증언.

 

12. 7월 19일, 23:00 – 경찰 조사에 따르면 자히르는 누르와 19일 밤 11시경부터 다투기 시작.

 

13. 7월 20일, 00:57 – 딸에게서 이틀간 연락이 없자 부친 샤우카트(전 한국대사)는 3통의 문자를 보냈으나 답이 없음. 당시 피해자의 부모는 볼일 때문에 집을 비웠다가 귀가함.

 

14. 7월 20일, 01:00 – 모친이 문자와 음성메시지를 남겼으나 역시 답이 없음.

 

15. 7월 20일, 05:45 – 부모와 친구들의 수많은 통화에도 이때까지 답이 없음.

 

16. 7월 20일, 10:43 – 답이 없던 누르에게서 갑자기 음성메시지 도착. “친구들과 함께 라호르에 갈 것이며 하루나 이틀 후에 돌아올 테니 걱정 마세요”라는 내용.(이후 경찰 조사 결과 누르는 이슬라마바드를 떠난 적이 없었음)

 

17. 7월 20일, 10:56 – 누르의 모친에게 자히르에게서 전화가 옴. 20여 분간 안부를 물으며 통화를 하다가 ‘누르가 나와는 같이 있지 않다’고 언급.

 

18. 7월 20일 11:00부터 19:30분까지 경찰은 누르가 자히르에 의해 감금과 고문을 당한 것으로 추정.

 

19. 7월 20일, 19:35 – 누르가 1층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정문으로 도주(CCTV 영상). 정문에 있는 경비실로 들어갔으나 자히르가 쫓아와 휴대전화를 빼앗고 집으로 데리고 다시 들어감. 경비 2인이 목격했으나 신고하지 않음.

 

20. 경찰은 누르가 이 탈출 직후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살인 동기

 

살해당한 누르의 시신에는 브라스 너클(Brass Knuckle, 손가락에 끼우는 금속무기)로 폭행당한 상처와 우측 관자놀이와 가슴에 칼로 찔린 상처가 있었다. 현장에서 권총, 칼, 도끼, 브라스 너클이 증거로 회수되었다.

 

파키스탄 현지언론 GEO NEWS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19년 12월 6일 자히르가 해외에서 귀국한 이후 정기적으로 접촉하고 있었다. 자히르는 지난 3개월 동안 68차례 누르와 연락했고, 누르 역시 47차례 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누르 무카담의 친구들의 증언으로는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으나 누르가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반면, 자히르는 해외 출신이라 그런지 종교적인 견해차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2년 전에 헤어졌는데 이후 자히르는 누르의 친구들에게까지 욕설과 협박 메시지를 보내왔고, 친구들은 이 때문에 “복수심이 살인의 동기일 것”이라며 “용의자가 수요일에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계획된 살인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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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행 현장 ©이슬라마바드 경찰

 

일각에서는 이슬람의 명예살인과 연관 짓긴 하지만, 오히려 독실한 신자는 누르였기에 종교보다는 친구들의 증언대로 헤어진 것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계획살인이 더 정황에 맞는 듯하다.

 

안타까운 골든타임


위 사건 개요의 19번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누르가 탈출에 성공했을 때 경비와 목격자들이 있었다. 이때 못 본 척하지 않고 신고를 했다면 그녀는 살았을 확률이 높다고 경찰은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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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 누르 무카담


또 택시기사 역시 여성이 신발도 신지 않은 상황과, 남자만 말하고 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도 못 본 척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처럼 여성을 소유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파키스탄 내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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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이 만든 추모관


파키스탄은 2019년 조지타운대학교가 조사한 여성, 평화, 안보 지수에서 167개국 중 164위를 차지했다. 또 세계경제포럼(WEF)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서 153개국 중 151위에 올랐다.

 

증거인멸 정황


20일 밤, 누르의 친구들이 ‘갇혀있다(탈출했을 때 보낸 듯)’ 문자를 받고 용의자 자히르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자히르는 친구들이 집안을 확인하겠다는 것을 거부하고 흉기를 휘두르며 폭언을 하였고, 결국 한 친구가 누르의 부모와 경찰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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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히르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심리치료사로 교육기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자기관리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자히르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 혹은 범행 직후에 부모와 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자히르의 부친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테라피 웍스(Therapy Works)라는 약물 재활, 상담 및 심리치료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부친은 테라피 웍스의 센터장에게 ‘자히르가 여성을 유혹하려고 하니 빨리 집으로 가달라’는 이상한 요청을 하였고, 출동한 센터의 직원들은 끔찍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저항하는 그를 묶어두었다.(이 과정에서 센터 직원 1명이 부상)

 

테라피 웍스는 용의자 자히르가 치료사와 강사로 근무하는 곳이어서 그들을 이용해 범죄를 은닉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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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를 위해 폐쇄되는 테라피 웍스


또 자히르는 친구들에게도 ‘도둑이 들었다’며 전화를 걸었고, 여자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큰일났으니 경호원을 불러서 함께 오라’며 부탁했다. 여자친구가 무슨 상황인지 묻자 어머니가 이상한 주사를 놓고 나를 테라피 웍스에 입원시키려 한다는 둥 횡설수설했다.

 

이후 경찰이 출동해 참수된 누르의 시신을 발견하고 밧줄에 묶여있는 자히르를 체포하였다.

 

과연 온당한 처벌은 이루어질까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수사선상에 올라있으며, 특히 용의자의 아버지인 자키르 자페르와, 어머니 아스마트 아담지, 가사도우미 이프티카르와 ​​자밀은 ‘증거인멸 및 범행공모’혐의로 체포되었다.


용의자의 변호인은 체포된 상황에서 범행에 쓰인 증거물도 다 확보되었으니 더 이상 구금할 필요가 없다며 석방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구금연장을 법원에 요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수락해 8월 9일까지 구금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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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에 출두하는 자히르 자페르(2021.07.26)


구금연장 심리과정에서 기자들이 법원을 나온 용의자에게 질문을 하려 하자, 한 수사관이 가로막으며 “그는 전도유망한 젊은 청년입니다(He is a very talented young man)라고 대신 답변하는 이해 못할 상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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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집회


이처럼 황당한 상황이 일어나고 ‘용의자 가족들이 재력과 인맥을 이용해 수사를 방해할 것’이라는 대중들의 의심이 커지는 가운데, 용의자의 친가인 자페르 가문과 외가인 아담지 가문은 피해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고 “이 잔혹한 행위를 규탄하며 우리는 자히르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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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들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좌측부터 마히라 칸, 마우라 후세인, 미샤 샤피, 오스만 칼리드 버트


또 파키스탄 대중들은 ‘살해당한 누르의 부친이 외교관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언론에 과연 보도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나 언급될 뿐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비슷한 피해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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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덮인 누르 무카담의 무덤(2021.07.22.)


어쨌든 앞으로 이 재판이 과연 공정하게 흘러갈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누르 무카담의 죽음이 파키스탄 여성인권을 바꾸는 불씨가 되어줄지에 파키스탄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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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범과 어떤 타협도 없을 것” 피해자의 아버지 샤우카트 전 주한대사


한편 용의자가 미국시민권자여서 미 대사관 직원이 구치소를 방문하여 면담한 사실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국대사관은 “용의자가 미국인이고 해외에서 체포되었기에 상태를 확인했을 뿐 그 나라 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변호사는 소개하지만 법적 조언이나 법원 절차에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며 석방에 압력을 넣지도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 2022년 2월 24일, 법원은 살인범 자히르 자페르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경비원들에게도 공범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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